옛 힘의 사람들
Mighty Men of Old에 붙이는 주해
1940년대 미국에서 출판된 구식 스트롱맨 인물지를 읽는다 — 소마틱스, 신경과학, 주르카네의 맥락에서.
근육의 나라가 아닌 뼈와 건(腱)의 나라, 고대운동의 유럽·미국 계보에 관한 학술 주해본.
주해 (Annotation): 방덕 (김주현)
│소마앤바디 · 힘의집 부대표
│내면소통명상연구원 패컬티
│주르카네스포츠 한국대표팀 감독
│2026년 4월
- 서론
- 제1부 — 뿌리와 계보
- 통합 논의 — 다섯 가지 문법
- 결론 — 고대 힘의집에서 현대 힘의집으로
- 실천의 제안
- 참고문헌
20세기 초 미국에서 출판된 Mighty Men of Old(Vol. No. 1)는 Louis Cyr, Eugene Sandow, Arthur Saxon, George Hackenschmidt, Apollon, Warren Lincoln Travis 등 1880–1940년대 유럽과 미국 피지컬 컬처 황금기의 대표적 스트롱맨 40여 명의 전기와 사진을 담은 갤러리 매거진이다.
본 주해본은 이 문헌을 소마틱스(somatics)·신경과학(neuroscience)·고대운동 연구의 세 관점에서 재독해한다. 원문은 종종 근력 수치와 일화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각 인물의 훈련 방식과 체형 기록을 주의 깊게 읽으면 건(腱)과 결합조직 훈련, 회전과 비대칭 하중, 머슬 컨트롤, 그리고 평생에 걸친 장수라는 네 가지 공통 주제가 드러난다.
이 네 주제는 주르카네(Zurkhaneh, 페르시아의 ‘힘의집’) 전통이 수천 년간 보존해 온 고대운동의 문법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본 주해본은 각 인물의 사진과 원문 요약에 방덕의 주해를 덧붙이고, 말미에 다섯 가지 통합 원리를 제시한다. 이 작업은 근대 피지컬 컬처가 고대운동의 계보에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문법의 서구적 번역본이었음을 시사한다.
서론 · Introduction
왜 지금 Mighty Men of Old를 다시 읽는가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다. 1940년대 미국에서 역도 팬들을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인물 갤러리이며, 페이지마다 사진과 전설적 일화, 근력 수치가 엮여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시 펼쳐야 할 이유가 있다.
오늘날 ‘운동’이라는 말은 대개 체육관(gym)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이 기록하는 시대의 ‘강함(strength)’은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다 — 서커스 무대, 음악당, 레슬링 링, 광산과 벌목장, 그리고 스승의 스튜디오. Attila의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계보는 Sandow·Klein·Rolandow·Cyr로 번졌고, Saxon 형제의 케틀벨 저글링은 Leipzig의 맥주집에서 영국의 뮤직홀로 흘러갔다.
이 장소들이 공통으로 가진 성격은 공연(performance)이었다. 운동은 지표 달성이 아니라 시연이었고, 시연이 가능하려면 몸은 매일 믿을 만한 구조를 유지해야 했다. 매일 붕괴하는 근육이 아니라,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정렬 — 이것이 1920년대 피지컬 컬처가 길러낸 몸의 핵심이다.
주르카네의 수련도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다. 수련자들은 음악과 시에 맞춰 밀(meel)을 휘두르며, 매일 반복할 수 있는 리듬적 지속성 속에서 힘을 쌓아간다. 유럽과 미국의 무대가 수천 년 전의 이란 고원의 전통과 같은 문법을 공유한다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몸이 본래 요구하는 구조가 보편적임을 시사한다.
이 주해본은 『Mighty Men of Old』를 단순한 향수의 기록이 아니라, 근대 피지컬 컬처가 고대운동으로부터 계승한 것과 잃어버린 것의 목록으로 읽는다. 각 인물의 사진과 원문 요약 뒤에, 소마틱스와 신경과학의 언어로 오늘의 수련자에게 말을 걸어본다.
고대의 힘은 홀로 자라지 않았다. 모든 위대한 스트롱맨의 뒤에는 그를 알아보고 훈련시킨 스승이 있었고, 스승의 뒤에는 또 다른 스승이 있었다. 『Mighty Men of Old』가 열어주는 첫 장면은 근대 피지컬 컬처의 계보 그 자체다.
표지의 장면 — 한 손가락으로 535파운드

표지에 실린 이 장면은 Warren Lincoln Travis가 한 손가락만으로 535파운드(약 243kg)의 상자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라 미국의 위대한 백리프트(back lift)·하네스 리프트 기록을 여럿 남긴 인물로, 이 책 말미(p25)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표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책 전체의 테제를 요약한다 — ‘힘은 전신의 구조적 정렬에서 온다’는 선언이다.
손가락 하나로 243kg을 든다는 말을 현대적 근력 훈련의 언어로 해석하면 오독(誤讀)하기 쉽다. 이것은 ‘악력의 힘’이 아니라 중력선·골격 정렬·결합조직 텐세그리티의 사건이다. 손가락은 그저 하중을 뼈로 전달하는 마지막 지점일 뿐, 실제 하중은 척추를 따라 곧게 정렬된 뼈와 장력(tension) 속의 건·근막으로 흘러내려 발바닥까지 이어진다.
펠든크라이스가 말한 ‘뼈로 서고, 근육은 방향만 안내한다’는 원리, 그리고 DNS(Dynamic Neuromuscular Stabilization)가 말하는 ‘복강내압과 축성 안정’의 원리가 이 한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Travis가 훈련한 것은 근육이 아니라 몸의 구조였다. 이 책의 나머지 모든 인물은 결국 이 문장의 다양한 변주다.
스승의 계보 — Attila와 Sandow, 그리고 Rolandow

원문은 모든 위대한 스트롱맨이 누군가의 발견 혹은 가르침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Arno Saxon이 없었으면 Arthur Saxon이, Professor Attila가 없었으면 Frederick Mueller(Sandow)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Attila는 Sandow와 Siegmund Klein을 길러낸 스승으로, 벤트프레스·로만 체어·글로브 덤벨의 창시자로 기록된다. George Rolandow 또한 Attila의 제자였으며, 그의 이름을 딴 ‘Rolandow Dumbbell(209파운드)’은 Klein의 체육관에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
주르카네(Zurkhaneh, ‘힘의집’)의 전통에서 스승(morshed)과 제자(pahlavan)의 관계는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몸의 기억을 몸으로 전하는 의례였다. 이 책이 기록하는 유럽·미국의 스트롱맨 계보 역시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Attila → Sandow → Klein으로 이어지는 이 계보는, 시연(demonstration)과 모방(imitation)과 교정(correction)이 만드는 감각의 전승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진 속 인물들의 자세다. Attila의 팔짱과 기립, Rolandow의 수직 정렬 — 이들은 ‘포즈’가 아니라 훈련의 결과로 몸이 찾아낸 휴식 자세(neutral)다. 현대의 피트니스 사진이 긴장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반면, 구식 스트롱맨의 사진은 오히려 ‘힘의 편안함’을 보여준다. 힘이 많을수록 쉬는 자세는 고요해진다.
The Saxon Trio — 케틀벨을 공처럼 주고받은 사람들

Leipzig의 한 작은 맥주집에서 Arno Saxon이 Otto Hennig와 Oscard Hilgenfeldt에게 스트롱맨 트리오를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영국 관객은 스트롱맨에 열광했고, 세 사람은 ‘The Saxons, A Trio of Muscular Marvels’로 무대에 올랐다. 원문은 특히 이들이 케틀벨을 공처럼 서로에게 던졌다(tossing kettle bells to each other)고 기록한다. Arthur가 즐겨 던진 것은 119파운드 케틀벨이었다.
오늘날 ‘케틀벨 저글링’이라 부르는 기술의 직접적 조상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읽어야 할 핵심은 ‘119파운드를 던졌다’는 수치가 아니라 ‘던졌다 받았다’는 동작 그 자체의 시간 구조다. 던지는 순간 하중은 0이 되고, 받는 순간 하중은 체중의 여러 배로 순간적으로 치솟는다. 이 진폭(amplitude)을 견디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건(腱)과 근막이다.
탄력성(elasticity)과 흡수(damping)가 동시에 필요한 이 과제는 고유수용감각(proprioception)과 예측적 조절(anticipatory postural adjustment)의 극한 훈련이다. 뇌가 날아오는 물체의 질량·속도·회전을 예측하고, 받기 직전 수백 밀리세컨드 전에 이미 근긴장을 조정한다. 이것이 현대 스포츠 과학이 말하는 ‘pre-activation’이며, Saxon 형제는 이 능력을 공연의 리듬 속에서 수련했다.
인디언클럽의 좌우 스윙, 페르시안 밀의 회전, 주르카네의 밀 리프트 — 모두가 이와 같은 탄성-흡수 순환을 기반으로 한다. Saxon 형제의 케틀벨 저글링은 서구의 이국적 쇼맨십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동양의 고대운동과 같은 뿌리에 닿아 있다.
Arthur Saxon — 건(腱)을 훈련한 사람

Arthur Saxon은 두 손 벤트프레스 448파운드(약 203kg)라는 아무도 깨지 못한 세계기록을 남겼다. 원문은 그가 ‘건(tendon)을 강화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기록한다. 그의 이론은 가벼운 운동은 피로만 주고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근육과 건의 전체 길이에 작용하는’ 고중량 스턴트를 짧게, 충분한 휴식과 함께 반복했다. 체중 210파운드, 키 178cm, 전완 37cm의 늘씬한 체형이었다.
Arthur Saxon의 훈련 철학은 현대 피트니스의 ‘많이·자주·타들어가게’와 정반대에 있다. 그는 짧게, 드물게, 전체 길이로 훈련했다. 이것은 현대 생역학이 말하는 ‘tendon stiffness and elastic energy storage’ 훈련의 원형이다. 건은 근육보다 느리게 적응하며, 과사용에 매우 민감하다. 매일 한계까지 밀어붙이면 근육은 비대해지지만 건은 염증과 미세손상에 빠진다.
Saxon의 방식은 오히려 주르카네 수련의 전통에 가깝다 — 일정한 리듬으로 오래, 그러나 매 동작은 온전한 구조로. 그가 ‘건을 훈련했다’고 말한 것은 ‘근섬유를 태웠다’는 말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건은 장력을 견디며 에너지를 저장·방출하는 수동적 스프링이며, 이를 훈련하는 것은 근육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정렬한 채 충분한 장력을 견디는 시간을 늘리는 일이다.
Saxon은 술로 무너졌다. 원문은 그가 영국인 아내와 결혼한 뒤 1차대전 발발로 독일로 소집되었고, 휴전 후 영국의 반독 정서 때문에 다시 만나지 못했으며, 어느 겨울 폭음한 다음 날 길에서 폐렴으로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을 가진 사람이 가장 약한 지점에서 무너졌다는 이 기록은 ‘힘의 훈련은 몸의 훈련만이 아니다’라는 주르카네 전통의 명제를 역으로 증명한다.
Otto Arco — 복부 아이솔레이션과 로댕의 모델

폴란드 태생, 135파운드의 작은 체격으로 278.5파운드 클린&저크에 성공했다. 레슬링과 역도 세계챔피언을 모두 차지한 드문 인물로, 1913년 파리에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발달한 인간’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조각가 Auguste Rodin의 모델이 되었으며, 복부 아이솔레이션(abdominal isolation)을 창시한 인물로 기록된다. 60세가 지나서도 역도대회에 참석하며 철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복부 아이솔레이션’이라는 말을 현대 트레이너가 들으면 식스팩 분리를 떠올리기 쉽지만, Arco가 시연한 것은 그것과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것은 복횡근·복사근·복직근을 독립적으로 감각하고 제어하는 능력, 즉 내장과 복강의 신체도식(body schema)을 세분화하는 작업이었다.
펠든크라이스가 말한 ‘차이를 느끼는 능력(ability to sense differences)’이 곧 학습이라는 명제가 여기에 있다. 복부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 수축할 때와, 복횡근만 독립적으로 활성화될 때 — 두 상태의 차이를 감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후의 정교한 복강내압 조절을 수행한다. DNS가 말하는 ‘cylinder breathing’의 진짜 뿌리가 이 전통에 있다.
그는 레슬링과 역도를 모두 세계 정상급으로 수행했다. 체중 61kg의 몸으로. 이는 현대 스포츠 전문화(specialization)에 대한 침묵의 반론이다. 몸이 하나의 언어를 충분히 깊이 익히면, 그 언어는 다른 종목의 문법으로 자연스럽게 번역된다.
Joe Nordquest — 한 다리로 선 벤트프레스

어린 시절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Joe Nordquest는 한 다리로만 선 채로 미국 벤트프레스 공식 기록 277.5파운드(약 126kg)를 수립했다. 훈련 중에는 300파운드도 성공시켰다. 키 161cm, 체중 95kg, 가슴둘레 120cm. 30인치 높이의 테이블 위에서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뛰어내려 바닥에서도 다시 물구나무를 유지하는 기술을 구사했다. 209파운드의 체중으로 이를 해낸 사람은 이후에 없었다.
벤트프레스(bent press)는 허리를 옆으로 깊이 굽히며 바벨이나 덤벨을 머리 위로 밀어 올리는 기술이다. 양다리로 설 때도 전신의 미세한 균형이 요구되는 동작을, Nordquest는 한 다리만으로 수행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한 근력이 아니라, 한 다리 위에서 골반-척추-흉곽-견갑-팔의 연속적 장력을 정렬시킬 줄 아는 몸 전체의 좌표 감각이었다.
장애는 종종 학습의 압력이 된다. 두 다리가 있는 사람은 흔히 한쪽 다리에만 하중을 싣는 비대칭 기술을 절실히 배우지 않는다. Nordquest에게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한 다리 서기’라는 기본 과제를 세계 최고 수준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야 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마주하는 바로 그 원초적 문제를, 평생의 수련 주제로 가진 셈이다.
원문은 그가 훗날 의족이 필요했을 때 비용이 없었고, Strength and Health 매거진의 독자 역도인들이 즉시 모금해 의족을 보내주었다고 기록한다. 강함의 공동체가 약함을 품는 방식에 관한, 짧지만 강한 장면이다.
Oscar Matthes — 몸은 역기가 아니다

Lawrence, Massachusetts에서 1863년 쌍둥이로 태어난 Oscar Matthes는 키 150cm, 체중 48kg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105파운드(약 48kg)의 체중으로 700파운드(약 318kg) 통(cask)을 한 손으로 세웠다. Sandow는 그를 만났을 때 ‘자신과 비견되는 체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기록된다. ‘Miniature Sandow’, ‘Pocket Hercules’로 불렸다. 그는 70대 후반에도 건강했고 역기를 들며 젊은이들을 지도했다.
Matthes의 사례는 ‘근력 = 근육량’이라는 근대 이후의 통념에 정면으로 부딪친다. 48kg의 몸으로 자기 체중의 6.5배를 든다는 것은 단순히 근섬유의 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구조(bone stacking)·호흡(IAP)·타이밍(timing)·그립(grip 텐션 분포)이 정밀하게 맞물려 만들어내는 체계적 사건이다.
아기가 처음 일어서는 순간을 생각해본다. 아기의 근육은 성인의 1/20도 되지 않지만, 자기 체중을 자기 다리로 들어 올린다. 근력의 절대량이 아니라, 몸 전체를 하나의 장력 구조로 조직하는 능력이 먼저다. Matthes는 이 원초적 조직력을 평생 잃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몸에 대한 농담을 ‘늘 유머로 받아들였다(always took any remarks about his small stature in the best of humor)’고 원문은 기록한다. 작은 몸은 그에게 결핍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였다. 이것이 고대운동이 현대 피트니스와 갈라지는 가장 깊은 지점이다 — 고대운동은 몸을 바꾸기 전에 있는 몸을 탐구한다.
스칸디나비아의 정직함 — 무게는 저울의 숫자만큼만

Arvid Anderson은 레슬링 챔피언으로 역도를 시작한 것은 30세였고, 훈련 첫 해에 332파운드 컨티넨털 저크에 성공했다. August Johnson은 ‘가장 정직하고 겸손한 프로 스트롱맨’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스트롱맨들이 기구 무게를 실제보다 부풀려 표기하던 관행에 반해, 그는 모든 리프트를 저울로 검증하고 전문가의 공증을 받은 뒤에야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이 페이지가 지나치듯 전하는 이야기 하나 — ‘스트롱맨들은 기구 무게를 실제보다 100파운드까지 부풀려 표기하는 거짓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mendacious habit of marking and announcing their weights considerably in excess of what they actually scaled)’는 문장은 20세기 초 흥행산업으로서의 스트롱맨 쇼가 어떤 구조 위에 서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 풍경은 오늘날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현대 피트니스에서도 무게와 반복 수, BPM과 kcal, 체지방률은 과장되거나 맥락 없이 인용된다. 숫자가 몸의 진실을 가리는 순간이 반복된다. Johnson의 선택은 조용하지만 급진적이었다 — ‘저울이 가리키는 숫자만 말한다.’ 이것은 정직한 프로프리오셉션, 곧 자기 몸의 실제 상태에 대한 정직한 감각을 훈련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Deriaz 형제 — 한 팔 스윙 193파운드와 회전의 유산

스위스의 다섯 형제(Emile, Maurice, Adrian, Ulysse, Florian) 모두 레슬링과 역도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 Emile은 10피트 이상의 제자리 멀리뛰기를 해냈으며, 한 팔 스윙(one hand swing) 193.5파운드 기록을 수립했다. Adrian은 1906년 파리에서 176파운드의 체중으로 프랑스 레슬링 챔피언이 되었고, 한 팔 클린&저크 223.5파운드, 한 팔 스내치 177파운드를 성공시켰다. Deriaz 형제는 덤벨 훈련의 열렬한 옹호자였고 긴 바벨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Emile의 ‘한 팔 스윙 193파운드(약 88kg)’라는 기록에 잠시 머물러보자. 한 팔로 88kg을 바닥에서 머리 위까지 휘둘러(swing) 올리는 동작은, 단순한 상체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골반에서 생성된 힘이 흉추의 회전을 거쳐 견갑·상완·전완으로 흘러 나가는, 전신의 나선 구조에 의존한다.
이 동작 구조는 현대 케틀벨 스윙과 스내치, 그리고 주르카네의 밀(meel) 스윙과 정확히 같은 패턴이다. Deriaz 형제가 ‘긴 바벨보다 덤벨을 선호했다’는 기록은 중요하다. 덤벨은 좌우 독립이며, 좌우 독립은 체간의 회전과 반회전을 허용한다. 바벨은 좌우를 묶어 체간의 회전을 상대적으로 억제한다.
고대운동이 사랑한 도구들 — 인디언클럽, 페르시안 밀, 메이스벨, 케틀벨 한 손 스윙 — 은 모두 비대칭 하중과 회전을 공통분모로 한다. Deriaz 형제는 스위스 알프스 자락에서, 자기도 모르게 주르카네의 문법을 살아내고 있었다.
Matysek과 Smith — 머슬 컨트롤과 노년의 힘

Anton Matysek은 미국 벤트프레스 기록 241파운드를 보유했고, Milo Barbell 카탈로그의 모델이었다. 그는 머슬 컨트롤 전문가로, 수많은 자세의 숄더 스탠드 기록을 세웠다. John Y. Smith는 1866년 배 위에서 태어났으며, Louis Cyr의 기록 중 하나를 최초로 깬 인물로 기록된다. 60세에 젊은이들을 상대로 뉴잉글랜드 최강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75세에도 175파운드 프레스가 가능했다.
이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가 하나 있다 — ‘오래된 스트롱맨들은 놀랍도록 젊게 유지되었다(Iron men retain their youth to an advanced age)’. Smith 60세 우승, Rolandow 60세에 백 공중돌기, Travis 65세 현역, Matthes 77세에도 기구 지도.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대 스포츠 과학이 말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관점에서 이들의 장수를 읽으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 이들은 모두 복잡한 협응 동작을 평생 다루었다. 단순 반복이 아니라, 매번 미세하게 다른 균형·타이밍·그립을 요구하는 리프트들. 뇌는 단순 반복에는 길들고 무뎌지지만, ‘새로운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 시도에는 끝없이 반응한다.
Matysek의 머슬 컨트롤 또한 같은 맥락이다. 개별 근육을 독립적으로 수축·이완하는 훈련은 운동피질과 감각피질의 신체도식(body schema)을 세분화한다. 이것이 뇌가 늙지 않는 한 방법이다. 고대운동과 머슬 컨트롤은 ‘몸을 쓰는 법’이 아니라 ‘몸을 감각하는 법’의 훈련이다.
Rolet과 Kryloff — 전방위성과 크루시픽스

André Rolet은 1920·1924 올림픽 프랑스 대표(미들급 역도), 1921년 프랑스 400m 챔피언(51초), 2시간에 3.7마일 수영, 24시간에 310.6마일 자전거, 21시간에 81.3마일 도보 — 이 모든 것을 동시대에 철인 최고 수준에 머물며 해냈다. Pierre Kryloff는 크루시픽스 포지션(양팔을 옆으로 수평으로 뻗은 자세)에서 각 90파운드씩 들고 버티는 세계기록을 30년간 보유했다. 그는 이 능력을 56파운드 블록을 양손에 들고 팔 앞으로 원을 그리며 휘두르는 운동을 한 번에 12회씩 반복하며 길렀다.
Kryloff의 ‘양팔을 수평으로 벌리고 각 90파운드를 버티는’ 자세는 오직 근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자세는 견갑대(scapular girdle)와 흉곽의 완벽한 정렬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견갑이 하강·후인된 채 흉곽이 확장되어 있을 때, 상완골은 공간에서 가장 긴 레버를 이루며 그 끝의 90파운드 중량은 근육이 아니라 뼈와 건의 장력 구조에 얹힌다.
그가 훈련으로 사용한 ‘양손에 덤벨을 들고 앞에서 원을 그리며 휘두르는 운동’은 곧 인디언클럽과 페르시안 밀의 형제다. 원형 궤적(circular trajectory)은 선형 리프트보다 먼 어깨 가동범위를 요구하며, 매 순간 하중의 방향이 바뀐다. 이것은 회전근개(rotator cuff)와 견갑 주변 근막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조건화한다.
Rolet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 전방위성(versatility). 그는 단거리·장거리, 수영·자전거·도보·역도를 모두 정상급으로 수행했다. 현대 스포츠 과학은 이를 ‘interference effect’로 설명하며 불가능하다 말하지만, Rolet의 존재는 이론을 당혹하게 만든다. 그의 비결은 아마도 ‘모든 종목이 같은 하나의 몸을 쓰는 방법’으로 체화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몸은 하나다.
Pandour와 Paulinetti — 조각가의 모델, 그리고 한 팔 플랑슈

Bobby Pandour(본명 Władysław Kucharzyk)는 폴란드 태생으로 Professor Attila의 제자가 되어 Pandour로 개명했다. 그는 체조 출신 스트롱맨이었고 Rodin과 같은 조각가들이 Sandow를 모델로 원했으나 Sandow의 값이 너무 비쌌기에 Pandour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다. Prof. Paulinetti는 한 팔 플랑슈(one arm planche)를 시연한 기록이 있으며, 손을 몸 옆에 붙이고 발을 모은 채 수행하는 헤드 스탠드도 그를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10살에 댄서로 시작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핸드 밸런싱으로 전향했다.
한 팔 플랑슈(one arm planche) — 한쪽 손으로만 바닥을 짚고 몸 전체를 수평으로 띄우는 이 기술은 체조의 모든 균형 요소 중 가장 어려운 것에 속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견갑의 극단적 전인(protraction)·하강(depression), 흉추의 완전한 신전(extension), 흉곽의 리프트, 복강내압의 정밀한 조절이 동시에 일어날 때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 — Paulinetti는 원래 댄서였다. 춤의 몸에서 플랑슈의 몸으로 넘어왔다는 이 전환은 단순한 종목 변경이 아니다. 춤은 중심(center)에서 사지(periphery)로 흐르는 힘의 분배를 길러주며, 이 감각 위에서만 한 팔 플랑슈 같은 극단적 정적 홀드가 성립한다. 근육의 수축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바깥으로 흐르는 장력의 질이 동작을 완성시킨다.
Pandour의 이야기는 또 다른 결을 건드린다. 그는 Sandow의 ‘대체 모델’이 되었지만, 원문은 그가 Sandow 경력의 정점 시기에 활동했으며 대중이 Sandow 너머를 볼 수 없었기에 그가 마땅한 인정을 얻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예술사에서 미켈란젤로의 아담이나 로댕의 조각들에 이름 없는 강한 노동자들이 모델로 섰다는 가설이 제기된다. 우리가 아는 ‘미의 원형’은 실상 힘을 평생 수련한 이름 없는 몸들의 흔적일 수 있다.
Ernst Cadine — 규칙을 바꾸게 만든 사람들

Ernst Cadine는 1920년 올림픽 챔피언이었고, 당시 유럽 최강자였다. 원문은 이 페이지에서 흥미로운 기술사적 기록을 남긴다 — 프랑스는 샷(shot) 충전식 글로브 덤벨을 고수하고 독일은 디스크식을 사용했는데, 샷식으로 리프트하면 순간적으로 내부의 샷이 공중에 떠 있어 한 순간 실질 무게가 가벼워지는 기계적 현상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프랑스 리프터들이었다. 또 다른 일화 — Helmut Schaeffer는 어깨폭으로 바를 잡고 머리 위로 올리며 손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스쿼트 스내치를 수행했는데, 그가 세계기록을 너무 앞서서 세우자 협회가 그 방법을 불법화했다.
이 페이지에서 고대운동 연구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은 ‘기술이 규칙을 바꿨다’는 기록이다. Schaeffer가 발견한 스쿼트 스내치의 움직임 효율이 너무 높아, 스포츠 행정이 새로운 몸의 지혜를 감당할 수 없어 금지했다. 이 장면은 스포츠의 역사에서 드물지 않게 반복된다.
Fosbury flop(높이뛰기의 배면뛰기)도 처음엔 이상하게 여겨졌고, 김연아의 점프 궤적도 초창기에는 ‘비정상’처럼 논의되었다. 몸이 더 경제적인 해법을 찾아내면, 제도는 일단 당황한다. 이것은 고대운동의 수련자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준다 — 지금의 ‘정통 자세’는 특정 시대 특정 규범의 결과일 뿐이며, 몸은 늘 그보다 먼저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
샷식 글로브 덤벨의 역학도 흥미롭다. 하중이 내부에서 움직이는 유체적 성질을 가질 때, 리프터는 ‘죽은 무게’가 아닌 ‘살아있는 무게’를 다루게 된다. 이것은 페르시안 밀의 무게중심이 그립에서 멀리 있어 매 순간 회전 관성을 관리해야 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살아있는 무게를 길들이는 것이 고대운동의 공통 문법이다.
Lemm과 Gorner — 레슬링과 리프팅의 교차

John Lemm은 스위스 레슬러로 유럽 그레코로만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고,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517파운드(약 234kg) 딥 니 벤드(deep knee bend = 스쿼트)를 기록했다. Herman Gorner는 ‘힘의 군주(Monarch of Strength)’로 불린 남아프리카 출신의 거인으로, 키 185cm, 체중 111kg에 한 손 데드리프트 세계기록 602파운드(약 273kg)를 보유했고, 목 뒤에서 397파운드를 머리 위로 저크했다. 그가 무대에서 지지한 다리 위로 5명이 탄 자동차(총 2,500kg)가 지나간 일화도 기록된다.
원문의 문장 하나가 오래 머문다 — ‘많은 구식 레슬러들이 다른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역도를 수련했다(Many of the old time wrestlers took to weight lifting to build up their strength while some of the lifters took to wrestling to demonstrate their strength against another man).’ 이 문장은 근대 초기의 레슬링-리프팅 교차가 단순한 종목 겸업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레슬러는 움직이는 저항(living resistance)과 겨루고, 역도 선수는 움직이지 않는 저항(dead weight)과 겨룬다. 두 저항은 서로 다른 지능을 요구한다 — 레슬링은 예측 불가능한 타이밍과 연속적 균형 변화를, 리프팅은 안정된 구조의 반복적 정렬을. 이 둘을 모두 수련한 몸은 안정과 예측불가능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
Gorner의 602파운드 한 손 데드리프트를 물리적으로 풀어보면 — 한 손만으로 273kg을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척추 한쪽이 극단적으로 측굴된 채 그 장력을 반대쪽 다리와 코어 시스템이 상쇄해야 한다. 이것은 레슬링에서 상대의 비대칭 공격을 견디는 것과 정확히 같은 근신경 조직을 요구한다. Gorner가 한 손 리프트에서 탁월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Professor Attila — 유럽 근대 피지컬 컬처의 설계자

1844년 독일 Karlsruhe에서 태어난 Louis Attila는 글로브 바벨, 벤트프레스, 로만 체어(Roman chair), 로만 컬럼, 카드 찢기의 창시자로 기록된다. 그는 1894년 뉴욕에 스튜디오를 열었고 80세까지 건강히 살았다. 그의 제자 명단은 놀랍다 — Warren Lincoln Travis, Lionel Strongfort, George Rolandow, Titus, Barker, Pandour, Cyr, Barres, Dandurand, Adolph Nordquest, ‘Gentleman Jim’ Corbett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영국의 에드워드 왕,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 노르웨이의 하콘 왕, 그리스의 조지 왕, 러시아의 차리나도 그에게 지도받았다.
Attila는 ‘Professor’라 불렸다. 이 호칭은 단순한 경칭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이었다. 그는 무대에 올라 힘을 과시하기보다, 스튜디오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원문은 그가 ‘배후에 남기를 선택했고 명성을 좇지 않았다(deigned to remain in the background, never seeking publicity)’고 기록한다.
그의 제자 명단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한 가지 종목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레슬러(Cyr), 역도 선수(Sandow), 복싱 챔피언(Corbett), 체조 출신 스트롱맨(Pandour), 백 리프트 선수(Travis), 유럽의 왕가 인물들. 이 다양성은 Attila의 가르침이 특정 기술이 아닌, 몸의 원리에 관한 것이었음을 시사한다.
글로브 바벨·벤트프레스·로만 체어·로만 컬럼 — 그가 창시했다고 기록된 도구들은 모두 몸의 구조적 정렬을 시험하는 장치다. 특히 로만 체어(복부를 뒤로 젖히며 척추 전체의 신전 가동성과 복부 제어를 훈련)와 로만 컬럼(머리만으로 버티는 브릿지 자세)은 현대 요가와 체조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형태다. Attila는 가르쳤고, 제자들은 흩어져 각자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섰다. 스승이 배후에 남았기에 계보가 넓게 자랐다.
Eugene Sandow — 근대 피지컬 컬처의 아이콘

1867년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난 Karl Frederick Mueller는 어린 나이에 독일을 떠났는데, 원문은 ‘당시의 강제 군사 훈련이 그의 계획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 기록한다. 브뤼셀의 한 카페에서 길 건너 ‘Professor Attila, Physical Culture Studio’ 간판을 보고 들어가 체육관 청소일을 얻었다. Attila가 그에게 ‘열심히 일하라. 너는 강함의 세계에서 큰 부를 이룰 것이다. 우리는 너에게 직업적 이름을 주어야 한다. 앞으로 너를 Sandow, Eugene Sandow라 부른다’고 했다. 그의 벤트프레스 기록 271파운드가 새 세계기록이 되었고, 미국에서 그는 백만 달러를 모았다. Sandow는 리프팅보다 포징과 머슬 컨트롤로 더 유명했다. 1925년 자동차 사고 후 사망했다.
Sandow의 이야기는 이름이 곧 몸의 기획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Mueller라는 평범한 이름에서 Sandow라는 신화적 이름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예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몸이 어떤 사회적 상상 위에 놓이느냐의 문제였다. Attila가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은 20세기 피지컬 컬처 산업의 탄생 설화다.
더 흥미로운 것은 ‘리프팅보다 머슬 컨트롤로 유명했다’는 기록이다. 이 책의 다른 인물들(Matthes, Matysek, Maxick, Arco)과 공통되는 키워드가 바로 머슬 컨트롤이다. 근대 피지컬 컬처의 1세대는 보여주는 힘보다 미세하게 조절되는 근긴장을 몸의 수련으로 삼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펠든크라이스·알렉산더 테크닉·소마틱스와 직접 닿아 있는 맥락이다.
Sandow는 분홍색으로 칠해진 자기 몸을 검은 배경 앞에서 보여주는 무대 연출을 했다. ‘분장된 몸을 무대 조명 아래 보여주는’ 이 장면은 당시 관객에게 ‘살아있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보였다. 피지컬 컬처는 처음부터 예술사와 공연예술의 언어 위에서 자라났다. 이것은 오늘날 헬스장의 거울 앞 셀피와 본질적으로 같은 계보다 — 몸을 미학적 대상으로 만드는 시선의 긴 역사.
그의 죽음(자동차 사고 이후 악화로 사망)은 한 시대의 종점을 상징한다. Mueller에서 Sandow로 떠올랐던 이름은 죽음과 함께 다시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연 체형 담론의 궤적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작동 중이다.
Passanant와 Rollon — 케이블과 해부도

Andrew Passanant는 보험 세일즈맨이었고 Liederman의 케이블 훈련 코스로 몸을 만들었다. Fred Rollon은 근육 분리도가 너무 뚜렷해 ‘인체 해부도(Human Anatomy Chart)’라 불렸고, 실제로 해부학 교재의 시각적 참조로 사용되었다. 원문은 ‘그의 피부는 비정상적으로 얇으며, 근육량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라 기록한다. 이 페이지의 전반적 메시지는 — 케이블과 역기로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부색조차 더 건강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Rollon의 ‘피부가 얇아서 근육 분리가 잘 보인다’는 기록은 오늘날 컨테스트 프렙의 ‘피부 밑 체수분 빼기(peak week)’의 원초 버전이다. 이 세계는 늘 보이는 몸을 향해 기울어왔다. 그러나 같은 페이지에서 이 책은 또 다른 가치를 말한다 — ‘무게 훈련은 아름다운 몸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신을 튼튼하게 하고, 폐를 더 건강하게 만들며, 피를 더 맑게, 심장을 더 강하게 한다’.
이 이중성은 피지컬 컬처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는 긴장이다 — 보이는 몸과 작동하는 몸의 긴장. 구식 스트롱맨들 대부분은 양쪽 모두를 지향했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금세 그 한계가 드러났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보여지는 몸만 추구하면 오래 가지 못하고, 작동만 추구하면 사람들 앞에 설 동기를 잃는다.
케이블 훈련에 대한 기록도 주목할 만하다. 케이블은 일정한 저항을 전 가동범위에 걸쳐 유지하며, 이는 자유 중량과는 다른 감각을 길러준다. 자유 중량이 ‘중력선과 몸 구조의 정렬’을 가르친다면, 케이블은 ‘의도한 방향으로 장력을 유지하는 섬세함’을 가르친다. 현대 트레이닝은 자유 중량 쪽으로 기울었지만, 케이블이 가르치는 감각은 여전히 중요하다.
Apollon — 두꺼운 손잡이와 건(腱)의 나라

Louis Uni, 즉 Apollon은 Louis Cyr와 함께 세계 최강자로 거론된 프랑스의 거인이다. 키 188cm, 체중 약 136kg, 팔둘레 51cm, 전완 49.5cm(기록상 최대). 그가 즐겨 사용한 바벨은 3인치(약 7.6cm) 두께의 손잡이를 가진 ‘Apollon Bar'(약 365파운드)였다. 그는 이 바벨을 매 공연에서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그가 은퇴한 뒤 수십 년간 아무도 그 바를 들지 못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30여 년 후 Charles Rigoulot이 엄지를 걸지 않은 그립(thumb-free grip)으로 이 바를 클린&저크하는 데 성공했다.
3인치 손잡이(약 7.6cm)라는 숫자에 잠시 머물러보자. 현대 올림픽 바벨의 손잡이 두께는 28–29mm(약 1.1인치)다. Apollon Bar는 그것의 약 2.7배다. 손가락으로 감싸지지 않는 이 두께의 바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과제는, 단순한 악력 문제가 아니라 손바닥·손가락·전완의 장력 분배가 극한까지 요구되는 과제다.
두꺼운 손잡이는 건(腱)과 결합조직을 훈련하는 원형 도구다. 근육이 손가락을 굽히고 쥐는 동안, 그 쥐는 힘을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전완 신전근의 건막(aponeurosis), 손등의 extensor retinaculum, 그리고 손바닥의 palmar fascia다. 얇은 바를 쥐면 손가락 끝이 서로 닿으며 잠기지만, 두꺼운 바에서는 이 자연스러운 잠금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조직이 능동적으로 장력을 생성해야 한다.
이것이 페르시안 밀의 두꺼운 그립, 메이스벨의 긴 손잡이, 케틀벨의 두꺼운 핸들, 인디언클럽의 배꼽 모양 손잡이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지점이다 — 손의 잠금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도구가 건과 결합조직을 길러낸다. Apollon이 수십 년간 어떤 현대 선수도 복제하지 못하는 기록을 남긴 이유는, 그의 몸이 근육의 나라가 아닌 건의 나라였기 때문일 것이다.
Rigoulot이 ‘엄지를 걸지 않은 그립’으로 Apollon Bar를 들어 올렸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엄지를 걸지 않으면 물리적으로는 손의 잠금이 약해지지만, 대신 손목의 자연스러운 정렬이 가능해져 바벨이 손바닥 깊숙이 앉는다. 기술은 근력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근력이 몸 구조의 이점으로 번역되게 한다.
Clevio Massimo — 바이올린과 역도의 이중생활

이탈리아 Opi Labruzzia 마을의 Sabatino 가문에서 태어나 미국 버팔로로 이주한 Massimo는 바이올린 콘서트 연주자가 되기를 바라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역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첫 공연은 역기를 벗기 전에 멘델스존의 E단조 협주곡을 연주하며 시작했다 — 관객은 그렇게 근육질인 사람이 이렇게 섬세한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체형은 매우 강했고, 227.5파운드 레그 컬 기록도 보유했다. 원문은 Leonardo da Vinci, 러시아 베이스 Chaliapin, 올림픽 역도 챔피언 Tofolas(오페라 가수)를 언급하며, 위대한 예술가들은 종종 위대한 힘을 가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페이지는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주장을 담고 있다 — 힘과 섬세함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현대 스포츠는 힘(strength)과 기술(skill)을 나누고, 거친 훈련(brutal training)과 섬세한 조절(fine motor control)을 서로 다른 영역이라 여긴다. 그러나 Massimo, Chaliapin, Da Vinci는 그 분리가 근대적 발명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신경과학적으로, 바이올린 연주와 역도는 공통 기반을 공유한다 — 소뇌의 타이밍 예측, 운동피질의 동작 프로그래밍, 체성감각피질의 고유수용감각 해상도. 높은 해상도의 고유수용감각(proprioceptive acuity)은 두 영역 모두에서 결정적이다. 90kg의 바벨을 머리 위로 올리는 순간 필요한 정밀도와, E단조 협주곡에서 정확한 포지션으로 활을 긋는 정밀도는 동일한 신경계의 다른 표현이다.
주르카네 전통에서 밀을 휘두르는 동안 시를 낭송하고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도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움직임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으며, 한쪽이 깊어지면 다른 쪽이 함께 열린다. Massimo는 20세기 초 미국 무대 위에서 이 오래된 진실을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Louis Cyr — ‘역사상 가장 강한 사람’

1863년 10월 11일 퀘벡 St. Cyprien에서 태어난 Louis Cyr는 13살에 성인 남성만큼의 일을 했으며, 통나무 작업(back-breaking labor)이 그의 청년기 근육을 강철로 만들었다. 18세에 캐나다 최강자 David Michaud에게 도전해 이겼다. 그의 기록들 — 4,300파운드 백 리프트, 987파운드 한 손 리프트, 535파운드 한 손가락 리프트, 1,897.5파운드 핸드&사이 리프트, 347파운드 클린&저크, 445파운드 쇼울더링, 131.25파운드 머슬 아웃(한 손), 300파운드 밀리터리 프레스(한 손). 체중 약 143kg, 키 163cm, 가슴둘레 151cm, 허리둘레 119cm. 1912년 11월 10일 사망. 퀘벡 전역에서 그를 애도하는 종이 울렸다. 그는 ‘Our Louis’로 세상에 기억된다.
Cyr의 숫자들을 나열하다 보면 신화적 문턱을 넘는 지점이 온다. 백 리프트 4,300파운드(약 1,950kg)는 일반적 근력 훈련의 범주를 벗어난다. 백 리프트는 등에 거대한 플랫폼을 올리고, 그 위에 중량을 얹은 채 무릎을 살짝 펴 들어 올리는 기술이다. 이 동작에서 실제 힘의 작용점은 대퇴사두근과 척추기립근이 아니라, 고관절의 각도와 척추 전체의 장력 분배다.
원문이 기록하는 Cyr의 청년기가 중요하다 — ‘통나무 작업이 그의 청년기 근육을 강철로 만들었다’. 근대 이전의 몸은 체육관이 아니라 생계 노동 속에서 만들어졌다. 13살의 몸으로 성인 남성의 작업을 하루 종일 반복할 때, 근육은 특정 부위 비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연쇄적 작업 능력(work capacity)을 얻는다. 이것은 체육관의 단기적 볼륨 훈련으로 복제되지 않는 영역이다.
Cyr의 체형에서 주목할 점은 허리 119cm라는 숫자다. 현대 피지컬 컬처의 미적 기준에서는 이것이 ‘잘못된 몸’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힘의 관점에서 두꺼운 허리는 복강내압을 담는 거대한 용기(container)다. 벤트프레스가 길쭉한 체형에 유리하다는 앞선 관찰과 반대로, Cyr의 강점은 짧고 두꺼운 몸통 위에 얹힌 압도적 복강내압에 있었다.
그의 죽음에 모든 성당의 종이 울렸다는 기록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한 시대가 ‘힘이란 무엇인가’를 한 사람을 통해 상상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Cyclops와 MacMahon — 그립과 하네스의 세계

Franz ‘Cyclops’ Bienkowski는 폴란드 태생의 거인으로 ‘세계 최강의 그립’으로 알려졌다. 그는 프랑(franc) 동전을 두 동강 낼 수 있었고(이는 수백 개의 동전으로 반복 시연되었다), 테니스 공을 한 손으로 터뜨릴 수 있었으며, 핀치 그립으로 두꺼운 판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Charles MacMahon은 체중 79kg에 핸드&사이 리프트 1,500파운드(약 680kg)를 수행했으며, 벤트프레스의 정석 시연자로 기록된다.
Cyclops의 동전 깨기는 흥미로운 예시다 — 그가 수백 개의 동전을 깼다는 기록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히 ‘악력이 강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강철 합금의 항복 강도를 손가락 끝의 국소 접촉력으로 넘기려면, 접촉면을 극단적으로 좁게 만들면서 동시에 전체 손의 장력을 좁은 지점에 집중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은 현대 클라이밍의 ‘크림프 그립(crimp grip)’과 구조적으로 같다. 손가락의 중간마디 관절(PIP)을 극도로 굽히고, 손가락 끝마디 관절(DIP)을 펴는 이 포지션은 짧은 지렛대에 강한 장력을 싣는 구조다. Cyclops는 체계적 클라이밍 훈련법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자기 몸의 해부학적 가능성을 극한까지 탐구했다.
MacMahon의 기록은 또 다른 주목할 점을 제공한다 — 그는 벤트프레스의 정석 시연자였다. 그가 단지 무거운 무게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정석의 폼(form)’을 보여주는 기준이었다는 것은 이 시기 스트롱맨 문화가 이미 기술 전승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초심자들은 MacMahon의 사진을 보고 배웠다. 사진이 교본이었다.
George Hackenschmidt — 세 가지가 하나가 되는 몸

1878년 러시아 Dorpat에서 스웨덴-러시아 혼혈로 태어난 Hackenschmidt는 14세에 체조 대회에서 우승했고, 동시에 16피트 제자리 멀리뛰기, 4피트 7.5인치 제자리 높이뛰기, 36파운드 덤벨 프레스 21회를 수행했다. 18세에 225파운드 쿨(curl)을 오른손으로, 125파운드를 왼손으로 해냈다. 엔지니어로 일하다 부상으로 방문한 의사 Dr. Krajewski에게 발견되어 St. Petersburg의 개인 체육관에서 훈련받았다. 275파운드 밀리터리 프레스, 243파운드 벤트프레스, 197파운드 한 손 스내치를 기록했다. 그는 1898년 제1회 러시아 역도 연맹 창립에 기여했다. 레슬링 기록 — 2,000여 경기 중 2패. Tom Jenkins를 MSG에서 22분 만에 반-넬슨으로 제압한 장면이 자세히 기록된다. 오늘날 ‘Hack’은 전 세계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Hackenschmidt는 이 책의 인물들 중 고대운동의 통합적 이상에 가장 가까이 간 인물이다. 그는 체조 선수였고, 역도 세계기록 보유자였으며, 레슬링에서 거의 무패였다. 이 셋이 한 몸에서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세 종목 모두가 같은 하나의 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체조는 공중에서 자기 몸을 제어하는 기술 — 내적 감각과 회전축의 정밀성. 역도는 지상에서 외부 하중과 자기 몸을 정렬시키는 기술 — 중력선과 구조 정렬. 레슬링은 또 다른 몸과 충돌하며 연속적으로 균형을 재조정하는 기술 — 예측 불가능성 속의 안정. 이 셋을 모두 수행하는 몸은 내적·외적·상호작용적 세 차원의 통합을 이룬다.
그가 은퇴 후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다는 기록은 의미심장하다. 몸을 극한까지 수련한 사람이 결국 철학으로 돌아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Hackenschmidt는 The Way to Live와 같은 저서에서 훈련·식이·사유를 하나의 통합된 삶의 방식으로 제시했다. 주르카네의 morshed가 가르치는 것도 기술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ādāb)이다.
그가 Jenkins를 제압한 순간 인용된 말 — ‘더 빨리 던질 수 있었지만, 그의 얼굴이 너무 창백해서 다치게 할까 봐 놓아주었다’. 힘은 멈출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오래된 진실을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다.
Maxick과 Carl Abs — 약한 시작, 늦은 시작

1882년 7월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Max Sick는 구루병·수종·폐병을 앓았다. 부모와 의사는 그가 정상적으로 살아남을지조차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Max Sick가 세계에서 가장 근육질인 사람이 되었고, 놀라운 리프팅 기록을 세웠으며, 머슬 컨트롤의 기예를 창시했다. Tromp Von Diggelen이 그를 영국으로 데려와 Maxick으로 개명시켰다. 체중 145파운드로 322.5파운드 (체중의 2배 초과) 저크에 성공했다. Carl Abs는 ‘독일의 떡갈나무’로 불렸으며, 레슬링과 역도의 독일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었다. 그는 31세에 역도를 시작했다 — ‘스포츠는 어려서 시작해야 한다(그리고 끝내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본보기’라고 원문은 기록한다.
Maxick의 생애는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변곡이다. 구루병 — 비타민 D 결핍으로 골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뼈가 휘는 병. 수종 — 체액의 비정상적 축적. 폐병 — 결핵이거나 폐의 만성 염증. 이 세 가지를 모두 앓은 아이가, 세계 최고의 리프터이자 머슬 컨트롤의 창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몸은 바뀐다’는 명제의 가장 강한 증거다.
개인적인 맥락에서 이 기록은 깊이 공명한다. 나 자신도 2009년에 폐결핵을 앓았고, 그때의 폐와 전신의 회복 과정에서 인디언클럽을 포함한 고대운동을 만났다. Maxick이 구루병과 폐병의 과거를 지나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는 기록은 나에게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병의 흔적을 가진 몸이 오히려 더 깊이 자기를 감각할 수 있다는 역설의 증언이다.
원문은 Maxick이 10살 때 서커스에서 ‘Hercul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스트롱맨이 25명의 어른을 판자 위에 태운 채 발로 지지하는 것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기록한다. 아버지와 의사가 ‘힘을 쓰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숲으로 들어가 비밀리에 훈련했다. 이 장면은 몸의 자가 치유가 종종 제도의 금지를 거슬러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Carl Abs의 ’31세에 시작’이라는 기록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 스포츠 담론은 ‘엘리트는 어려서 시작해야 한다’는 명제를 반복한다. 그러나 Abs, John Y. Smith(60세 챔피언), Rolandow(60세 백 공중돌기), Travis(65세 현역)는 이 명제를 흔든다. 몸은 시간표를 엄격히 따르지 않는다. 언제 시작하느냐보다 어떻게 꾸준히 깊어지느냐가 결정적이다.
Zbyszko와 Arco — 레슬링과 역도의 상호 보완

Stanislaus Zbyszko는 22.5인치(약 57cm)의 상완(biceps) 둘레를 가진 레슬러로, 세계 챔피언십을 가장 여러 번 잃고 되찾은 인물로 기록된다. 1907년 Padoubny에서 처음 세계 타이틀을 얻었고, 60세가 지나서도 세계 챔피언십을 4회 도전했다. ‘인도의 챔피언 Gama에 10초 만에 패했다’는 기록 또한 남겼다. 이 페이지는 레슬링과 역도의 결합을 논하며 — Zbyszko는 거대함과 거대한 근육을 얻었지만 수려한 체형은 아니었다. 반면 Otto Arco는 두 종목을 모두 세계 정상에 올리며 가장 균형 잡힌 체형 중 하나를 얻었다.
이 페이지는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관찰 중 하나를 한 문장에 담고 있다 — ‘레슬링과 역도는 뛰어난 조합이지만 늘 수려한 체형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Wrestling and weightlifting are an excellent combination though they do not always build a pleasing physique).’
Zbyszko는 두껍고 강했지만 시각적으로 균형 잡히지 않았다. Arco는 가볍고 정밀했으며 로댕의 모델이 될 만큼 아름다웠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종목(레슬링+역도)에서 세계 정상급에 도달했지만, 같은 수련이 왜 이렇게 다른 몸을 만드는가?
답은 훈련의 질(quality)이 아니라 훈련에 다가가는 몸의 원래 형태(genesis)에 있을 것이다. Zbyszko는 타고난 거구였고, 그 거구는 레슬링의 질량 전투에 유리했기에 더 키워졌다. Arco는 135파운드의 작은 몸이었고, 그 몸은 미세한 제어와 속도를 통해 경쟁해야 했다. 같은 운동이 다른 몸에 들어갔을 때, 운동은 몸의 원래 방향성을 증폭시킨다.
원문이 이어서 말한다 — ‘레슬링과의 결합은 한 사람을 60세가 지나서도 젊게 유지시킨다(the combination of wrestling keeps a man youthful well past 60).’ 레슬링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반응적 균형을 요구하며, 이 요구가 신경계를 늙지 않게 유지하는 결정적 변수다. 역도만으로는 얻기 힘든 이 ‘살아있는 반응성’이 레슬링-역도 결합의 비밀이다.
Warren Lincoln Travis — 고아원 아이, 미국 최강자

1876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Roland Morgan은 유아기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 맡겨졌다. 브루클린의 Travis 부부가 그를 입양하며 Warren Lincoln Travis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 Mr. Travis가 남북전쟁에서 존경한 Kemble Warren 장군의 이름에서 Warren을,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에서 Lincoln을 가져왔다. 12세에 피지컬 컬처에 빠졌고, 16세에 웨이트 테스팅 머신에서 2,000파운드를 들었다. 18세에 체중 140파운드로 21명(총 3,000파운드)을 등으로 들어올렸다. 1918년 42세에 백 리프트 3,657파운드(비공식 4,240파운드), 하네스 리프트 3,985파운드, 한 손가락 리프트 1,105파운드, 핸드&사이 리프트 1,498파운드. 1907년 브루클린 애슬레틱 클럽에서 수많은 리프트를 10분 안에 수행한 기록이 있다. 65세의 나이에 여전히 Coney Island의 자기 쇼에서 매일 공연했다.
이 책이 표지에서 시작한 Travis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아원에서 시작해 65세 현역으로 끝나는 이 궤적은, 『Mighty Men of Old』가 그리는 피지컬 컬처의 이상을 한 인물에 응축한다 — 출신이 아닌 수련, 기록이 아닌 지속.
백 리프트 3,657파운드(약 1,660kg), 비공식으로는 4,240파운드(약 1,924kg). 이 숫자 앞에서 잠시 멈춰야 한다. 이것은 현대 역도의 어떤 리프트와도 구조적으로 다르다. 백 리프트는 척추 기립근의 수축력이 아니라, 중력선에 정렬된 뼈대가 하중을 견디는 기술이다. 리프터는 무릎을 살짝 구부린 상태에서 무릎을 펴는 각도 변화만으로 하중을 몇 센티미터 들어 올린다. 대부분의 힘은 구조가 감당하며, 근육은 구조를 유지하는 역할이다.
이 기술이 보여주는 것은 고대운동의 가장 깊은 통찰 중 하나다 — ‘힘은 근육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의 구조가 허락하는 것이다.’ 돌의 문법(stone lifting)에서, 페르시안 밀의 회전에서, 주르카네의 밀 리프트에서, 그리고 Travis의 백 리프트에서 반복되는 이 명제는 근대 피트니스가 잊어버린 오래된 지혜다.
그가 42세, 65세까지 현역으로 공연했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 스트롱맨의 학장(Dean of American Strongmen)’으로 젊은 팬들과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기록은 힘의 진정한 성취는 기록이 아니라 오래 남는 몸이라는 주르카네의 가르침을 미국 브루클린의 해변에서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40여 명의 인물을 관통하고 나면, 겉으로는 각기 다른 종목과 체형과 시대 속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공유하는 몇 가지 근본 문법이 드러난다. 이 문법은 현대 피트니스의 담론에서 대체로 사라졌으며, 그 부재가 현대 운동인의 흔한 부상과 단기적 수명을 설명한다. 다섯 가지로 정리해본다.
1. 건(腱)과 결합조직 중심의 훈련
Arthur Saxon은 ‘건의 길이 전체에 작용하는’ 훈련을 했다. Apollon은 3인치 손잡이의 바벨을 사용했다. Kryloff는 중량을 팔 앞에서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Cyclops는 강철 동전을 손가락 끝의 국소 접촉으로 부러뜨렸다. 이들이 공통으로 훈련한 것은 근섬유의 비대가 아니라 건과 근막의 장력 전달 능력이었다. 현대 스포츠 과학은 이것을 tendon stiffness, elastic energy storage, fascial resilience로 부르기 시작했지만, 이 영역의 훈련 방법론은 여전히 초보 단계에 있다. 구식 스트롱맨은 이미 이를 완성된 형태로 수련하고 있었다.
2. 비대칭 하중과 회전
Deriaz 형제는 ‘긴 바벨보다 덤벨을 선호했다’. Saxon은 119파운드 케틀벨을 공중에서 던져 받았다. Emile은 한 팔 스윙 193파운드를 기록했다. Kryloff는 양손에 덤벨을 들고 앞에서 원을 그렸다. 이 모든 동작은 좌우 비대칭 하중 또는 회전 궤적 혹은 둘 다를 포함한다. 이는 인디언클럽·페르시안 밀·메이스벨·주르카네의 밀이 수천 년간 수련해 온 나선적 움직임의 문법과 정확히 같다. 현대 피트니스가 선호하는 양측 대칭의 바벨 훈련은 이 문법의 극히 일부만을 보존한다.
3. 머슬 컨트롤 — 감각의 해상도
Sandow, Arco, Matthes, Maxick, Matysek — 이 책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인물들은 모두 ‘머슬 컨트롤(muscle control)’을 수련했다. 이것은 단순한 근육 수축이 아니라 개별 근육군을 독립적으로 감각하고 제어하는 능력이다. 펠든크라이스(Feldenkrais)가 말한 ‘차이를 느끼는 능력이 곧 학습’이라는 명제의 실천적 형태다. 머슬 컨트롤은 운동피질과 체성감각피질의 신체도식(body schema)을 세분화하는 훈련이며, 이것이 이들이 60·70·80대에도 활발히 움직였던 신경학적 기반이다.
4. 종목의 수렴 — 체조·레슬링·리프팅
Hackenschmidt는 체조·레슬링·역도 세 종목에서 모두 세계적이었다. Arco는 레슬링과 역도의 세계챔피언이었다. Lemm, Deriaz 형제, Carl Abs도 레슬링과 역도를 함께 수련했다. Pandour와 Paulinetti는 체조에서 출발해 스트롱맨이 되었다. Massimo는 바이올린과 역도를 함께했다. 이 시대의 몸은 종목 특화되지 않았다. 하나의 몸이 여러 종목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수련한 것이 ‘종목 기술’이 아니라 몸의 원리였음을 증언한다. 종목은 그 원리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었다.
5. 장수 — 60·70·80대의 현역
Smith는 60세에 뉴잉글랜드 최강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Rolandow는 60세에 백 공중돌기를 했다. Travis는 65세에 Coney Island에서 매일 공연했다. Matthes는 77세에 여전히 기구를 지도했다. Attila는 80세까지 살며 활동했다. Zbyszko는 60세가 지나 세계 챔피언십에 도전했다. 이들의 운동 수명은 현대 엘리트 선수의 평균을 훨씬 넘어선다. 그 비결은 위의 네 가지 원리 — 건 중심 훈련, 회전과 비대칭, 머슬 컨트롤, 종목 수렴 — 이 함께 만들어내는 부상을 피하며 신경계를 늙지 않게 유지하는 수련 구조에 있었다.
결론 · Conclusion
고대 힘의집에서 현대 힘의집으로
『Mighty Men of Old』가 기록하는 인물들은 이미 대부분 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사용한 글로브 덤벨, 두꺼운 핸들의 벨, Rolandow Dumbbell과 Cyr Bell은 박물관이나 몇몇 체육관에 조용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주해본이 확인한 것은, 그들이 수련했던 몸의 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원리는 페르시아의 주르카네에서 수천 년 전부터 보존되었고, 인도의 아카라에서 메이스벨과 함께 살아남았으며, 레슬링과 체조와 춤과 무술의 수많은 지류 속에 스며들었다. 근대 유럽·미국의 스트롱맨은 그 오래된 문법의 한 가지 서구적 번역이었다. 번역은 원본의 일부를 잃고 일부를 새롭게 발견한다. 이들의 기여는 머슬 컨트롤을 의식화하고, 피지컬 컬처의 교육 체계를 만든 데 있다. 그들의 잃음은 주르카네가 유지한 음악·시·공동체·의례의 문맥이었다.
오늘의 힘의집(Himuzip)은 이 두 갈래를 다시 이어보려는 작업이다. Attila의 스튜디오가 가르친 정교한 교육 체계와, 주르카네가 보존한 리듬과 공동체의 문법. 이 두 전통이 한 몸에서 다시 만날 때, 구식 스트롱맨들이 60·70·80대까지 유지했던 그 생생한 몸이 오늘의 수련자에게도 가능해진다.
이 주해본은 그 재접속의 한 시도다. 원문의 인물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 특히 Professor Attila가 — 아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그가 80세까지 해왔던 일, 제자들을 가르치고 스스로를 잊은 채 배후에 머무는 일. 우리는 그 계보의 먼 후예다.
이 주해본을 덮기 전에, 자기 몸에 조용히 던져볼 수 있는 네 가지 질문을 남긴다.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물음을 품은 채로 수련에 들어가 보는 것이 이 책을 가장 깊이 읽는 방식이다.
하나 ─ 오늘 내가 든 무게 중에서, 근육이 아니라 뼈가 그 무게를 받고 있었던 순간이 있었는가?
둘 ─ 한 동작에서 좌우 비대칭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것을 교정하려 애썼는가, 아니면 그 비대칭의 결을 따라가 새로운 길을 찾아보았는가?
셋 ─ 내가 지금 느끼는 ‘힘을 쓴다’는 감각과, 그 힘이 빠져나간 뒤 남는 편안한 정렬의 감각 — 이 두 상태의 차이를 감각할 수 있는가?
넷 ─ 60세의 내가 오늘의 수련을 본다면, 그는 무엇을 조금 덜 하라고 말할 것인가?
참고문헌 · References
Mighty Men of Old, Vol. No. 1 — Being a Gallery of Pictures and Biographies of Outstanding Old Time Strong Men. (연도 미상, 1940년대 추정). 원저 편찬자 미상.
Feldenkrais, M. (1972). Awareness Through Movement. Harper & Row.
Hackenschmidt, G. (1908). The Way to Live. Athletic Publications, London.
Kolar, P., et al. (2012). Dynamic neuromuscular stabilization & sports rehabilit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Sports Physical Therapy, 7(2), 154–166.
Maxick (1911). Muscle Control. Athletic Publications, London.
Sandow, E. (1897). Strength and How to Obtain It. Gale & Polden, London.
Schleip, R., et al. (2012). Fascia: The Tensional Network of the Human Body. Churchill Livingstone.
UNESCO (2010). Pahlevani and Zoorkhanei Rituals.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Van Der Kolk, B. (2014).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 본 주해본은 학술적·교육적 목적의 주해 작업이며, 원저 『Mighty Men of Old』의 이미지와 원문 일부를 주해 대상으로 삼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원문 인용은 비평적 논평과 함께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