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무니콜로기
서로 자기지시적으로 닫혀있는 대화. A 내적대화와 B 내적대화 사이의 대화. 이런 경우 서로 외적 담론을 나눈다 하더라도 그 담론은 표면에서만 머뭅니다. 외적인 것을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 내적인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싫어하는(외적인) 것을 자주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
싫어하는 것을 말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지시하고 제약합니다. 외적인 무엇이 싫다고 하는 것은 사실 그 무엇이 싫은 게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내면의 무엇’을 스스로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자기 지시적으로 닫혀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외적인 무엇’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외적인 무엇에 대해 하루종일 말해도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풀리지 않는 갈증과도 같습니다. 스스로를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영원히 반복하게 됩니다. 그 외적인 ‘무엇’을 바꾸고자 노력도 해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전환해보기도 합니다. 파괴할려고도 해보고 무관심해보기도 합니다. 그 ‘무엇’을 없애달라는 허튼 기도도 해보고 아예 잊기 위해서 허튼 명상도 해봅니다. 그래서 효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은 다시 다른 ‘무엇’으로 형태만 바껴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렇게 수없이 패턴을 반복하면서 삶이 됩니다. 외적인 무엇에 의해 삶의 형태가 결정나는 것입니다. 형태는 다양합니다.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즐거울 수도, 끔찍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2) 휄든크라이스 수련을 통해 얻은 소매틱 커뮤니케이션
휄든크라이스를 하면서 좋았던 것은 바로 내가 내면의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점차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피드백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를 소매틱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