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I 고레에다 히로카즈 Hirokazu Koreeda
우연히 국제사랑영화제에서 보게된 영화.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촬영된 필름으로 무려 1988년에 촬영된 다큐영화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친구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단체관람 일정이 잡혀서 별생각없이 제목도 모른체로 들어가서 봤는데
정말 말그대로 얻어걸렸다.
영화에 나오는 초등학교에서는 각 반별로 가축을 키우게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필요에 의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한다.
아이들의 ‘필요’를 스스로 학급회의에서 스스로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교사는 철저히 제 3자가 되어 적제적소에 질문을 던지는 식의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 그 계기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배우는 것을 돕는 사람이다.”
교육에있어 나의 이 첫째 계명을 실현하기엔 사실상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갇혀 있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간혹 정말 좋은 교사가 있다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복불복 아닌가.
교육감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전체가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때 도무지 안심이 안될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의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고등학교때까지 평균 95점이상을 유지해서 자신의 비젼과 관련된 학과를 가진 좋은 대학에 가는게 계획’이라고 말하는게 이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래에 되고자하는 목표가 눈으로 보여지는 직업에 한정되어 있다. 이 모습이 과연 어른들이 ,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아이들이 좋은 꿈을 키워가는 것인가?
현실은 수능망치면 자살하는게 다반사 아닌가.
그런의미에서 이미 1980년도에 일본의 한 지역에서 이런 교육의 실천 사례가 있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영화에 등장한 아이들은 이미 40대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텐데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가 궁금하고 자신의 자녀들의 교육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자녀를 두고 있거나 언젠가 자녀를 가지게될 모든 사람이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내가 존경하는 유연한 사고와 창조적인 성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생겨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학교를 세울 것이다.
학교의 기능을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현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
내아이를, 내 손자를 보내도 안심할 수 있는 학교.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 머리속에 떠올리는 학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의 ‘필요’를 스스로 학급회의에서 스스로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교사는 철저히 제 3자가 되어 적제적소에 질문을 던지는 식의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 그 계기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배운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배우는 것을 돕는 사람이다.”
교육에있어 나의 이 첫째 계명을 실현하기엔 사실상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갇혀 있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간혹 정말 좋은 교사가 있다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복불복 아닌가.
교육감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전체가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때 도무지 안심이 안될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의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고등학교때까지 평균 95점이상을 유지해서 자신의 비젼과 관련된 학과를 가진 좋은 대학에 가는게 계획’이라고 말하는게 이나라 교육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래에 되고자하는 목표가 눈으로 보여지는 직업에 한정되어 있다. 이 모습이 과연 어른들이 ,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아이들이 좋은 꿈을 키워가는 것인가?
현실은 수능망치면 자살하는게 다반사 아닌가.
그런의미에서 이미 1980년도에 일본의 한 지역에서 이런 교육의 실천 사례가 있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영화에 등장한 아이들은 이미 40대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텐데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가 궁금하고 자신의 자녀들의 교육은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자녀를 두고 있거나 언젠가 자녀를 가지게될 모든 사람이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내가 존경하는 유연한 사고와 창조적인 성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생겨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학교를 세울 것이다.
학교의 기능을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현재의 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
내아이를, 내 손자를 보내도 안심할 수 있는 학교.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 머리속에 떠올리는 학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